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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그 뜨거운 열정과 낭만을 기억하며 : 남미를 처음 만났던 순간, 남미의 진짜 모습, 삼바와 축구만 있는 곳? 그보다 깊은 문화의 향기, 뜨겁게 성장하는 대륙, 남미를 떠나며
sayok2518 2025. 2. 13. 11:55
남미를 처음 만났던 순간
몇 년 전, 나는 한 달간 남미를 여행할 기회를 얻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에서부터 페루의 마추픽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신비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미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뜨거운 삶의 방식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처음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솔직히 조금 긴장했다. 한국에서 들었던 남미에 대한 이미지는 ‘위험하다’, ‘치안이 불안하다’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항에서부터 낯선 여행객인 나에게 먼저 말을 걸며 환하게 웃어 주는 남미 사람들의 친절함을 접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편견에 갇혀 있었는지 깨달았다.
남미에서 보낸 시간은 내 삶에서 가장 뜨겁고, 자유로웠던 순간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밤바람 속에서 삼바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노신사와 함께 탱고를 배웠다. 마추픽추의 신비로운 아침 햇살을 마주할 때는,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위대하고 경이로운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움직였던 건, 남미 사람들이 가진 ‘삶을 사랑하는 태도’였다.
남미의 진짜 모습
한국에서 남미를 떠올리면, 흔히 ‘위험하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남미에 직접 가보면, 그것이 얼마나 단편적인 시각인지 알게 된다.
물론 남미에도 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볼리비아 라파스의 시장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곁에 있던 볼리비아 현지인 아주머니가 내 가방을 붙잡고, 소매치기범을 향해 스페인어로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여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곳이 아니야. 다만 조심해야 할 곳이 있을 뿐이야.”라고 말했다.
남미 사람들은 위험한 곳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처럼 모든 것이 정리정돈된 곳은 아니었지만, 대신 사람들 사이의 정이 넘쳤다. 길을 걷다 길을 잃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고, 가게에 들어가면 주인은 단골이 아니라도 먼저 말을 걸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남미는 ‘위험한 곳’이라기보다는,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었다. 불안한 면도 있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따뜻함과 연대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삼바와 축구만 있는 곳? 그보다 깊은 문화의 향기
브라질 하면 삼바, 아르헨티나 하면 축구. 하지만 남미 문화는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깊었다.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커피 농장을 방문했을 때가 기억난다. 농장 주인은 직접 재배한 커피를 손수 볶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내 입안에 퍼지는 부드러운 향과 깊은 맛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커피는 시간이 필요해요." 농장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커피나무를 쓰다듬었다.
"이 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몇 년이 걸려요. 하지만 기다릴 가치가 있어요. 좋은 것들은 언제나 시간을 들여야 하거든요."
그 순간, 나는 문득 한국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나 자신을 떠올렸다. 빠르게 결과를 내고,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던 나. 하지만 남미 사람들은 삶을 ‘급하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음미’하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페루에서는 안데스 산맥을 따라 형성된 작은 마을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아직도 잉카 시대의 전통이 남아 있었고, 원주민들은 직접 짠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전통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춤에 맞춰 박수를 치며, 그들이 지켜온 역사와 문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뜨겁게 성장하는 대륙
한국에서는 남미를 ‘가난한 대륙’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남미를 직접 경험해 보면, 그곳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가면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현대적인 도시를 볼 수 있다. 콜롬비아의 메데인(Medellín)은 ‘남미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만큼 IT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스타트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이 활발한 국가로 떠오르고 있으며,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 중 하나다.
남미는 과거의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 찬 대륙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너무 오랫동안 ‘편견의 프레임’ 속에서 바라보았던 것이 아닐까.
남미를 떠나오며, 그리고 다시 그리워하며
남미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작은 바에서 한 노신사를 만났다. 그는 오래된 레코드판을 들고 있었고, 내게 말을 걸었다.
"네가 한국에서 왔다고? 한국이든 아르헨티나든, 결국 인생은 같은 거야." 그는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중요한 건, 네가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부르고, 얼마나 많은 춤을 추느냐야."
그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남미는 그런 곳이었다. 가난해도, 힘들어도,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인생을 사랑하는 곳.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남미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
그리고 오늘도 나는 남미를 그리워한다. 뜨거운 태양,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나를 웃게 했던 수많은 사람들. 남미는 그저 한 번 다녀오는 여행지가 아니라, 가슴속 깊이 남는 ‘기억’이 되어버렸다.